축일 10월 1일 성녀 소화 데레사(Teresa)

신분: 수녀, 교회학자

활동지역: 리지외(Lisieux)

활동연도: 1873-1897년

같은이름: 소화 데레사, 소화데레사, 테레사, 테레시아

 

 

리지외의 성녀 소화 테레사(Teresia)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의 알랑송(Alencon)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Louis Martin)과 젤리 게랭(Zelie Guerin)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Marie)와 폴린느(Pauline)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Celine)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Marie Gonzague) 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선종한 지 26년만인 1923년 시복식, 곧이어 1925년 5월 17일 시성식을 갖고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97년 6월 10일 성녀 테레사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꽃과 선교의 수호성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작은 여왕’, ‘소화(小花) 데레사’라는 애칭으로 널리 부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의 딸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 테레즈.

 

그녀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노르망디의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겸손과 복음적 단순성과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익히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이 같은 덕행을 수련자들에게 가르쳤다.

 

소화 데레사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바쳤고, 어둠 가운데서도 순명 정신으로 주님께 충실하였다. 그녀는 처음 각혈을 하였을 때, 주님과 만날 때가 다가왔다는 예고를 겸손과 온유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느님을 열애하고 또 다른 사람도 뜨겁게 사랑하여 모든 영혼을 구하려는 열망에 불탔던 그녀는 죄인들의 회개와 교회의 쇄신을 위하여, 특히 먼 지방에 가 있는 선교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오랜 중병으로 병석에 누운 마지막까지 견디기 힘든 고통을 불평 한마디 없이 견디며 머나먼 지방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헌하였다.

 

1897년 24세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감하였고, 1925년 시성되었다. 축일은 10월 1일이며 꽃과 선교의 수호성인이다.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리지외의 데레사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꿋꿋하고 위대한 영혼을 지녔던 인물이다.

 

“가장 이상적인 영적 삶 살아”

세상 떠난후 자서전이 출판되자

감춰졌던 ‘영성과 믿음’ 드러나

  

“거대한 태양을 끌어안고 단숨에 타버린 작은 별이여

완성을 향해 아픔의 씨앗 품고 우주를 색칠하던 꽃

백 년이 넘어도 빛 바래지 않은 겸허한 얼굴

순한 향기로 끝없이 피어나는 작은 꽃이여

 

숨고 싶어 숨고 싶어

하찮은 일도 환희로 꽃 피우며 기도로 열매 맺고

다함 없는 믿음과 ‘사랑의 학문’ 밖엔

가진 게 없던 우리가 닮고 싶은 고운 님이여”

 

(이해인 수녀의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에게’)

  

불과 24년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겸손하고 온유하며, 꿋꿋하고 위대한 영혼을 지녔던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그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하게 자신을 봉헌했고, 평생을 그를 휘감고 있던 어둠 가운데에서도 오직 순명의 정신으로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맞기 18개월 전,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나 각혈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주님과 만날 때가 왔음을 깨닫고 이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믿음과 희망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며 말했다.

 

“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너무나 연약했던 데레사 성녀는 그러나 그 약함을 주님께 대한 온전한 의탁과 신뢰로 가다듬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2고린 12, 10)라고 선언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그는 자신의 평생을 통해 증거했다. 약함을 통해 강함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손길은 성녀의 영혼 깊숙이, 사랑만이 자신의 성소이고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14세 때 체험한 ‘사랑의 열’에 대해 토로한다.

 

“이 사랑의 열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집어다 통째로 불 속에 던지는 듯 했습니다. 아아! 무어라 할 수 없는 그 불, 또한 동시에 이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는 사랑에 탔습니다.” 데레사 성녀의 이 애덕이 곧 그에게 성소의 열쇠를 주었으며, 바로 그 애덕 때문에 데레사 성녀는 결코 로마 순례 외에는 고향인 알랑쏭을 떠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되도록 했다.

 

애칭 ‘소화 데레사’

 

가르멜회의 수녀이자 포교사업의 수호자로 ‘소화 데레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은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쏭에서 아홉 자녀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은 비교적 큰 어려움이 없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수도 생활을 열망했을 만큼 믿음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자선과 사랑의 실천에도 모범적이었다. 이러한 성가정의 분위기는 성녀의 다정한 성품과 깊은 신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녀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생애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눈다. 즉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 리지외로 이사한 후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혹독한 세심증과 영적 고통을 겪던 8년간의 시절, 그리고 깊은 내적 회심의 경험을 한 이후의 시기이다.

 

지극히 평범했던 생활

 

데레사는 어렸을 때부터 고통스런 병으로 앓는 경험을 가졌다. 열 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으로 석달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었는데, 경련과 환각, 때로는 의식을 잃으며 육체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15살에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해서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녀회에 입회해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지낸 9년 반의 데레사 성녀의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활력이 없고, 아무런 특별한 소명이나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았던 성녀의 내적 삶은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적인 형태였던 것이다. 그의 영성을 나타내는 ‘작은 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가야 할 이상적인 길이었다. 그것은 특히 삶의 방법이나 형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지니고 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렇듯,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영적 삶을 살았던 성녀이기에 그 생전에 그의 삶의 영성은 감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자서전이 출판되자 수많은 이들이 데레사의 영성과 그 믿음의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서전이 수없이 번역돼 출간됐고, 성녀의 전구로 나타난 은총의 표지들이 드러났다. 마침내, 시성은 사후 50년이 지나야 한다는 교회의 관례에도 불구하고 교황 비오 11세는 데레사를 ‘성덕의 으뜸이며 기적의 천재’라고 불러 사후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성녀로 선포했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얻은 영광은 오직 하느님께 대한 사랑, 그로부터 매일 매일 자신의 본분, 가장 사소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일까지 충실하게 지켜나간 그 충실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특히 겸손과 복음적 단순성과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신뢰심을 수련하고, 이 같은 덕행을 말과 모범으로 수련자들에게 가르쳤다. 영혼들의 구원과 교회의 쇄신 및 선교 지역에서의 신앙 전파를 위해 생애를 바치고, 1897년 9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1925년 성인품에 올랐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녀의 자서전'에서

(안응렬 역, 1975년, 가톨릭 출판사 pp.229-230)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묵상할 때 이 간절한 원이 순교에 못지않은 고통이 되어서, 무슨 대답을 찾을 양으로, 성 바울로의 서간집을 폈습니다. 코린토 전서 12장과 13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이가 한꺼번에 사도와 예언자와 학자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없다는 것, 교회는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눈은 동시에 손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대답은 분명하였지마는, 제 원이 채워진 것은 아니었고, 평화가 온 것도 못되었습니다. 성녀 막달레나가 텅빈 무덤가에 앉아 줄곧 굽어보다가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을 발견했던 것같이, 저도 제 허무의 깊은 속까지 저를 낮춤으로 몹시도 높이 올라가 제 목적에 다다르게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실망치 않고 그대로 읽어 나가다가 이 구절에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도께서는 어떻게 되어서 아무리 완전한 특은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지를 설명하시고, 천주께로 확실히 가기 위해서는 애덕이 가장 훌륭한 길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마침내 저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성교회의 신비체를 살펴보니, 성 바울로께서 설명하신 아무 지체에서도 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모든 지체에서 저를 찾아내고자 하였습니다. “애덕”이 제 “성소”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저는 만일 교회가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졌다면, 모든 기관 중에 제일 필요하고 제일 귀한 것이 그에게는 없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 사랑이 꺼질 지경에 이른다면, 사도들은 복음을 더는 전하지 못할 것이고,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한다는 것, 즉 한 말로 말해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미칠 듯이 기쁜 중에 부르짖었습니다. 오 제 사랑이신 예수여!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천주여, 이 자리를 제게 주신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 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제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살며 배우며] 사랑의 박사 성녀 소화 데레사

  

시월을 전교의 달로 지내고 있는 교회의 전례력으로 눈을 돌리면,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로 이 달을 엽니다. 가톨릭교회의 수많은 성인들 가운데, ‘소화(小花) 데레사’로 더 친숙해 있는 데레사 성녀처럼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도 드뭅니다.

 

자신의 삶을 이름 없는 작은 꽃과 같이 여긴 데레사 성녀는 24세의 꽃다운 나이(1873-1897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수녀입니다. 성녀의 삶은, 얼른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습니다. 위대한 사업을 한 것도 아니요, 엄청난 일을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없을뿐더러 교리에 박식하여 직접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쳐 본 적도 없습니다. 로마를 순례한 것 말고는 가르멜 수녀회의 봉쇄구역 안에서 지극히 짧은 생을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세계의 많은 신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마치 어린아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 바치려는 순수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는 작은 모래알이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15세에 가르멜 수녀회에 들어가 9년이라는 짧은 수도생활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수녀회 규칙에 충실하면서 기도생활에 열중한 성녀의 영성, 곧 성녀가 하느님과 이룬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습니다. 자서전은 가르멜 수녀회의 관습에 따라 그녀가 죽은 지 일년 뒤에 나와 세상에 알려지면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성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작은 길’은 그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살아야 하는 길입니다. 그것은 삶의 어떤 방법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지녀야 할 가장 순수한 영혼의 태도를 말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자세입니다. 성녀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나게 하였으며,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결코 낙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때때로 실수를 하더라도 그 해악은 그리 큰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성녀는 1925년 5월 17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사는 가운데 특히 선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기에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일생의 소망으로 여겼던 소화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탁월한 덕행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많은 영성가들은 성녀에게 ‘사랑의 박사’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녀의 성덕을 더욱 널리 빛내고자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에 이어, 1997년 10월 19일 전교주일에 소화 데레사 성녀를 ‘교회 박사’로 선포하였습니다.

 


 

 

 

포교 사업의 수호자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 대축일

(10월 1일)

 

 가장 강한 힘, 겸손

  

요즈음 경쟁력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다른 이들, 다른 분야와 차별화하고 두드러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것이어야 경쟁력, 곧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과 능력을 키우려고 애를 쓴다. 또 가장 어려운 때가 투자의 적기라며 여러 가지 공부를 한다. 무슨 언어 능력이며, 자격증이며, 경쟁력이 되는 것들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모두 힘이라고 생각한다. 힘을 가지려고 능력을 키운다.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재물도 능력이므로 그것으로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 권력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명예도 그러하며, 무엇이든 가진 것은 다 능력이고, 그것으로 힘을 쓰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능력이다. 그것이 내 삶에서 힘이 된다. 아는 것도 힘이고 그래서 알아야 면장을 한다. 무엇이든 할 줄 아는 것이 능력이다. 감지하고 느낄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베풀 줄 알고, 도와줄 줄 알고, 새로운 것을 성취할 줄 알고, 남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앞서서 할 줄 아는 것, 이 모든 것이 능력이며 힘이다.

 

이런 것을 특출하게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난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각계각층에 난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능력 있는 사람들이며, 훌륭하며 위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어떤 사람일까? 제자들이 물었다. '누가 가장 위대하냐?’고. 그것도 ’하늘나라’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어 어린이와 같이 되라.’ 또 말씀하시기를,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아듣는 것은 난사람이 아니라, 철부지처럼 순진한 '어린이’이며,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춘 ’겸손한 사람’이다. 이들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복음적으로 단순하고 겸손한 사람이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겸손한 성인들 가운데 '소화 데레사’ 성녀가 있다. 작은 꽃이라는 뜻으로 '소화(小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마다 시월 첫날이 되면, 우리는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 대축일’을 지낸다. 이날이 주일이 되어도 이 성녀의 축일을 지낸다. 또 '포교 사업의 수호자’라 부른다.

 

이 성녀가 어떤 분이시기에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크신 분으로 교회에서 축제를 지내는 것일까? 데레사 성녀(1873-1897년)는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리지외 지방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가르멜 수녀원은 사회에서 활동하는 수도회가 아니어서 그들의 삶을 세상이 잘 알지 못했다. 옛날에는 더욱 그러했다. 수도원에서 그의 삶은 길지도 않았다.

 

스물다섯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럼에도 위대하고 크신 성인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은 가장 작은 분이며 가장 겸손한 분이었기에 하늘나라에서 가장 크신 분이 되신 것이다.  그는 가르멜 수도원에서 오직 '겸손’과 '복음적 단순성’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배우고 익혔으며, 이 덕행을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후배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이분께 '예수 아기의 성녀’, 작은 꽃 '소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또 주님께 충실한 순명 정신으로 자신의 소명이 사랑임을 깨달았고, 그 사랑이 열렬한 선교 정신이었기에 ’포교 사업의 수호자’가 되신 것이다.

 

이날 축일은 우리 모두에게 ’작은 길’ 곧 겸손의 길을 따르라고 가르친다. 어머니 팔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베푸시는 선에 자신을 내맡기라고 일깨우고 있다.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평화를 누리는 것이 큰 기쁨이 된다. 그래서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며 오로지 주님의 일에만 마음을 쓰고 주님만을 섬기는 '한마음의 동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생존경쟁의 사회이다. 강한 사람,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러나 이 축일의 소화 데레사 성녀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뜻은 그 반대이다. 하느님의 뜻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위대하고 힘 있는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다.

 

우리는 생활 가까운 곳에서부터, 일상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소중한 가치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성녀께서 가르치신 작은 길로 나아가자.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이기정 다니엘 신부, 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