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발자취!

창동성당은 197521 일 수유동성 당, 도봉동 성당을 모본당으로 설립 되었으며, 번동성당 (1983), 방학동성 당 (1990), 4동성당(1991, 현 창5동성당), 쌍문2동성당(1999, 현 쌍문동성당)을 분할했다.창동성당은 1974년 성골름반 외방선교회에 의해 아일랜드 출신진 요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해 창동 지역을 중심으로 수유동과 도봉동의 신자들 500여 명으로 창동 재래시장 지하실을 전세로 빌러 시작했다 (교구 인준: 197521).

1년 후 현재 지하철 4호선 쌍문역 에 인접 한 대지 300(992)을 매입해 지하에 교리실과 수녀원을 건축하고 이어 현재 만남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치상 1층에 성전을 축복했다.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를 주보성인으로 정했고, 다음 해성전 2층을 증축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지니게 되었다.초대 진 요한 신부는 성당을 완공하고 특별히 레지오를 확장해 신지·수를 배했고, 1978년에 2대 주임 으로 같은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호주 출신 홍 야고보 신부가 부임해 레지오 활동을 더욱 활성화했다.

홍 야고보신부는 1982년에 번동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신창시장 지하실을 전세로 빌려 미사를 시작하며 번동성당을 분가 했다. 같은 해 창동성당은 성 골롬반외 방선교회 에서 서울대교구로 이관되어 정광웅 요셉 신부가 부임했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 봉송, 교구 설정 200주년 행사, 세계 44차 성체대회, 요한 바오로 2세교황 내한 등의 큰 행사가 30, 40대 젊은 교우들의 봉사와 참여, 일치와 단결된 활동으로 이루어졌다.이어서 1986년에 최영식 마티아 신부가 부임했는데 불행히도19884월에 전기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했고 2층 상당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I층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

1989년 부임한 김세진 가브리엘 신부는 성당을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고, 성당을 완전히 다시 혈고 새로 짓는 대신 원래의 골조를 유지하고 살려서 성전을 복구하게 되었다.

19895월 성전 복구가 완성되고 김수환 추기경 이 축복함으로써교우들의 고생이 기뿜으로 정착 되었다.

1990년에는 방학동성 당의 분가, 1991 에는 창4동성 당 (현 창5동성당)의 분가가 이루어졌고, 김창훈 바오로 신부 이후 1992년 남학현스테파노 신부의 부임 에 이어 현재의 교육관 부지 189(625)을 매입했다. 여기에 조립식 건물을 짓고 생활 공동체 농산물 직판장을 개장해서  지방의 농산물을 직 거래해 도시와 농촌의 협력을 도모했다.

1997년 부임 한 송진 발렌티노 신부는 소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쌍문2동성당을 분가하고 초대 주임으로 이동했다.

이후 송명은 신부, 오기오 신부가 부임해 사목하고, 2005년 남궁은 바오로 신부에 의해 교육관을 건축하게 되었고 1년여 만에 지상6, 지하 1층으로 완공되었다.

노인 대학, 지구 꼬미시움 모임, 지구 혼인교리 등 여러 교육이 이곳에서 실시되기 시작했고, 지구 장애아부 주일학교 모임도 아울러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 김남길 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하였고,

현재는 소윤섭 요셉신부님이 2015년 2월17일에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창동성당은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도움으로 설립 된 이후 도봉구내 수개의 본당 분가에 앞장서고, 화재라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침착하고 슬기롭게 신앙으로 극복했으며, 전 교우가 화합해 성당을 운영하고 교육관을 건설했고, 역대 사목회장과 사목위원 및 각 단체장들의 희생과 봉사와 사랑과 열성으로 신앙 공동체를 키워 가고 있다.